선택장애가 뭔가요 먹는건가요 (우걱우걱) 그냥저냥 삽니다

A.

선택장애. 결정장애. 

‘장애’라는 말을 뒤에 붙일 만큼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스물 일곱, 내 삶의 방식은 확실히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요하지 않은) 양자택일의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아빠는 항상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는 엄청 유치해 보였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가벼운 선택의 문제에서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하루는 24시간이며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택은 꽤나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므로 동전을 던져도 될 정도의 가벼운 선택은 동전을 던지는 것이 현명하다. 



B.

오늘 뭐 먹지? 라는 고민은 나의 지갑사정을 고려한다던가 매일 점심을 먹을 집을 정해두면 되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을 시킬거냐고 묻는 점원에게 이 집은 뭐가 제일 맛있어요? 라고 묻는 것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나만의 규칙을 정하자.  

짜장이냐 짬뽕이냐는 정말 고민할 가치가 1도 없다.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둘 중 아무거나 시켜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그럴 땐 짝수일이면 짜장을, 홀수일이면 짬뽕을 시켜먹자. 

메뉴판에 더 위에 있는 메뉴를 고른다던가. 

아무래도 좋다. 

다양한 시험을 치렀다. 사지선다 혹은 오지선다인 경우 모르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미련 없이 한 번호로 찍는다. 

어떤 번호를 고를지는 시험 전에 정해둔다. 

답을 고르지 못한 문제를 제외하고 모든 답을 마킹한 후 비어있는 번호는 문제도 보지 않고 한 번호로 찍는다. 

나중에 그 답이 맞으면 운이 좋게 맞았으니 기분이 좋고, 틀렸어도 어차피 몰랐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답지를 보고 이거 고를까, 저거 고를까 했다가 내가 고르지 않은 답이 정답임을 알았을 때의 그 좌절감이란 OTL


C.

나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규칙적인 생활 방식을 선호한다. 

대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는 8학기 내내 9시 수업을 선택해 들었다.

월요일 아침 9시 수업을 들었을 때 해당 수업의 교수님께서 웃으시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월요일 9시부터 수업을 듣는 너희=학생들이 참 대단하다는,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하셨었지.

그 수업을 듣는 학생은 10명, 한 강의가 폐강되지 않기 위한 최소 인원이었다. 다른 수업이 보통 30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적은 인원이다. 

나는 아침을 되도록 챙겨먹기 때문에 수업이 있는 날이면 매일 아침 8시 15분에 학교에 도착해서 기숙사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학기가 시작하면 바로 기숙사 식권을 수십장 씩 사두는 것이 일이었다. 

그래야 러시아워의 한 복판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아침도 챙겨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식사로 오늘 뭐 먹지, 하고 고민해 본 적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학생식당에 가면 돈까스 / 면 / 탕 / 백반 등 코너가 구분되어 있었지만 거의 그 백반을 시켰고 

가끔 돈까스나 라면이 먹고 싶으면 그렇게 했다. 가격도 저렴했고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학교 안에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음식 하나에 꽂히면 1년까지도 그 음식만 먹는 타입이라 더욱 간편했다. 

기숙사 푸드코트의 순두부찌개가 나에게 정말 맛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점심으로 그 메뉴를 먹었다. 

해가 바뀌자 식당 이모님은 내가 계산대 앞에 서기만 해도 주문부터 순두부찌개로 넣은 뒤 값을 계산해 주셨다.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내가 가는 장소는 대개 정해져 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그 날 여정의 목적이 그 커피전문점이 아닌 이상 스타벅스를 간다. 

식당도 가는 곳만 간다. 여러 곳을 다녀 본 후 나의 ‘밥집’으로 정한 레스토랑들이기 때문에 

언제 가서 무엇을 먹어도 항상 만족스럽다. 

메뉴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오늘 타코를 먹었으면 다음에 부리또를 먹으면 된다. 


D.

두 말 해야 입아프게 유명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 하면 바로 검정 목폴라와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가 떠오른다. 

이러한 ‘유니폼 룩’ 혹은 ‘시그니쳐 룩’은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다. 

페이스북의 젊은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역시 마찬가지다. 

선택과 집중.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기 위해 선택의 폭을 최소한으로 한다. 

혹은 아예 다른 선택지를 배재한 채 단벌신사가 되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복은 나를 옥죄는 아이템이기도 했지만 ‘오늘 뭐 입지?’ 라는 어려운 고민에 대한 최적의 해답이었다. 

대학생이 되자 은근 그 시절의 교복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자율복으로 출근하는 회사원들은 ‘오늘 뭐 입지?’가 엄청난 스트레스라고 한다. 

여자 사원이 많은 회사의 경우 자신보다 높은 직급의 사원보다 더 비싼 브랜드의 옷, 가방 등을 들지 않는 것도 

중요한 처세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다.  


E.

스물 한 살 때 친구에게 B와 D사이의 C 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Life is C between B and D.” 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로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에는 끊임없는 Choice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뭔가 확 와닿는 말이다.



F.

B<=C<=D 가 아니라 

B<C<D 이다. 


G.

8월의 마지막 날 비정상회담의 주제로 선택장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남이 해 주는 선택은 결국 ‘나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그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경우 그것은 ‘나쁜 선택’을 해 준 네 탓이다. 

잠깐 곁들여 이야기 하자면 책임은 가장 무거운 단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고로 죽은 사람은 있는데 그 사고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최근에 일어난 강남역 사고도 그렇고 대부분의 정재계 고위 인사가 얽힌 사건사고는 특히나 그렇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ㅡㅡ)

고위 공무원이든 대기업 임원이건 높은 자리는 그만큼 책임을 지는 자리다. 

자신의 아랫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두 어깨 위에 짊어진 사람들이다. 

그걸 모르는 ‘높으신 분들’이 너무 많다.


H.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남의 선택에 의존하는 것은 아주 비겁하다. 

그런 사람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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